익산시의 도심은 옛 이리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금마면에는 백제시대 문화재인 미륵사지가 있고, 고구려 부흥운동의 한반도 남부 중심지로 고구려를 계승한 보덕국(報德國)의 수도이기도 하였다. 왕궁면 일대에는 국가식품클러스터가 조성되고 있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원광대학교와 전북대학교 특성화캠퍼스가 있다. 시청은 남중동에 있고, 행정 구역은 1읍 14면 14동이다.
'익산'은 원래 금마면 일대의 이름이고, 지금의 익산시의 중심 지역은 전주의 속현인 옥야현(沃野縣) 지역으로 치소는 모현동에 있었다. 본래 백제의 소력지현(所力只縣)으로 757년에 옥야현으로 개칭하고 금마군(金馬郡 : 익산)의 영현(領縣)이 되었다가, 940년에 전주의 속현이 되었다. 익산시의 시가지는 백제 시대부터 '솝말'(속마을), '솝니', '솜리' 또는 '이리'(裡里)라고 불렀는데, 이는 만경강의 조수(潮水) 구간에 위치한 늪 지대에서 '갈대가 우거진 속에서 멀리 보이는 마을'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176년에 감무를 두면서 주현으로 승격했다가 얼마 후 다시 전주의 속현이 되었다. 이후 주현으로 승격되지 못하고 폐지되었고, 전주의 동일면, 서일면, 남일면, 남이면, 북일면이 되었다. 1906년에 전주군에 속해있던 옛 옥야 5개면이 우북면(옛 우주현)과 함께 익산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 동일면과 남일면은 익산면으로, 서일면과 남이면은 오산면으로 통폐합되었다. 우북면은 제석면과 합병하여 왕궁면이 되었다.
'익산'은 '산이 더해지다'라는 뜻을 담고 있지만 익산시의 실제 지형은 평지가 산지보다 많은 편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구릉과 충적층으로 이루어진 평야지대이고 북서쪽 경계 부근에 일치봉(133m)·함라산(240m)·봉화산·취성산·망해산(230m) 등의 낮은 산지가 이어진다. 북동쪽은 노령산맥의 서쪽 사면에 해당하여 천호산(500m)·미륵산(430m) 등 해발고도 200∼500m의 산지가 솟아 있다.
옥천 습곡대의 남서부에 위치한 익산시는 북동쪽이 옥천계(옥천 누층군)의 변성 퇴적암류로 구성되어 있고, 남동쪽에는 왕궁면·팔봉동을 중심으로 중생대 쥐라기의 편마상 화강암이 분포하며 망성면·낭산면·함열읍·황등면 등에서는 중생대 쥐라기의 대보 화강암이 분포한다. 편마상 화강암과 대보 화강암 분포지는 대체로 해발 고도 50m 미만의 구릉지이다. 북서쪽은 편암·편마암·규암 등의 변성암류가 대보 화강암에 접경(接境)하여 용안면·웅포면·성당면·함라면 등 금강 연안지대에 분포하여 해발고도 약 100m의 산지가 이루어진다. 옥천 누층군의 변성퇴적암 지층인 창리층과 문주리층이 분포하는 여산면 천호산 일대에는 석회석 광산과 대리암 동굴 천호동굴이 있으며, 함열읍과 황등면에는 황등석 또는 익산석이라 불리는 복운모 화강암이 분포하여 좋은 석재를 채취하며 석재 가공업이 활발하다. 익산역 이남에서 만경강까지는 지반이 약하여 고층건물의 건설에는 문제가 있다.[25]
기후는 연평균기온 13°C 내외, 1월 평균기온 -0.2°C, 8월 평균기온 25.6°C, 연평균강수량 1,200∼1,300mm로 남부서안형 기후에 속한다. 첫서리는 10월 중순경에, 마지막 서리는 4월 중순경에 내려서 무상기일은 180∼190일이다. 강수량은 전라북도의 해안에 비해 많은 편이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백제 시대의 유물로 대한민국 국보 제 11호이다. 대한민국 국내에 남아 전하는 석탑으로는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탑으로. 현재 남아있는 층수는 6층이며, 동탑지 주변발굴에서 노반(露盤)이 발견되어 9층이었음이 밝혀졌다. 이 석탑은 목조탑파의 양식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한국 석탑의 기원이 된다.
익산 왕궁리 유적왕궁리유적 (왕궁면 궁성로 666) 예로부터 마한 혹은 백제의 궁궐자리로 알려진 곳으로 금마산에서 남으로 약 3km쯤 떨어져 야트막하게 전주행 국도변에 자리하고 있는 대지이다. 현재 왕궁평성내에는 1997년 1월 1일로 국보 289호로 지정된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과 주춧돌, 백제 시대의 정원석으로 보이는 관상석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익산쌍릉 (석왕동 산 55, 56) 익산시 석왕동에 자리하고 있는 굴식 돌방무덤으로 2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약 150m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그 중 크고 북쪽에 있는 무덤은 ‘말통대왕릉’ 또는 ‘대왕릉’으로 불리고 있는데 여기의 ‘말통’은 서동의 이름인 마동이 잘못 전하여진 것이라고 한다. 남쪽에 있는 규모가 약간 작은 능은 ‘소왕릉’으로 알려져 있다.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금마면 동고도리 1084-2)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남쪽으로 10리쯤으로 떨어진 들판에 금마를 남류하는 옥룡천(玉龍川)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약 200m 떨어진 마주 보며 서있는 두 기의 석인상이다.두 석상은 서쪽의 석상은 남자이고, 동쪽의 석상은 여자인데 이 두 석상 사이로 옥룡천(玉龍川)이 흐르기 때문에 이 둘은 평시에는 떨어져 만나지 못하다가 섣달 그믐날 밤 자정에 옥룡천 냇물이 꽁꽁 얼어붙으면 두 석상이 서로 건너와서 끌어안고 그동안 맺혔던 회포를 풀다가 새벽에 닭이 울면 헤어져서 다시 제자리에 가 선다고 한다.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왕궁면 궁성로 674) 왕궁평성 중앙의 대지위에 자리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왕궁탑’이라고 불리는, 높이 8.5m의 장중한 탑이다. 탑의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백제시대 설과 통일신라 설, 그리고 고려 초기 설이 대립되어 주장 되고 있었으나, 발굴결과 탑의 하부(下部)에서 다져쌓기로 조성된 건물지 흔적이 발견되어 석탑의 조성 연대는 백제시대보다는 다소 늦은 시기의 것으로 판단된다.
익산 토성/보덕성 (금마면 서고도리 50-3) 익산을 거점으로 고구려 부흥운동을 전개했던 보덕국(報德國)의 치소였다. 표고 125m의 둘레 690m 규모로 오금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작은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으로 흙과 돌을 사용하여 쌓았으며, 오금산성(五金山城) 또는 보덕성(報德城)이라고도 한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92호로 지정되었다.